Intro








    소정서에게 음악이라고 한다면 음악 시간에 지겹도록 듣는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가끔씩 실기까지 해야 하는 오솔레미오 정도였다. 친하지 않지만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과 얼떨결에 놀러갔다가 노래방에 가면 돈 아깝게 2시간 동안 박수만 치다가 돌아오고, 애들끼리 좋아하는 노래를 서로 나눠들으며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낄 때도 왜 저렇게까지 하는 지 이해를 못했다. 소정서는 딱, 열여덟이 될 때까지도 인생에 음악이라고는 가끔 부모님이 듣는 추억의 7080, 유행가처럼 떠도는 트로트 혹은 귀에 익을 정도로 들은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전부였다. 심지어 시끄럽게 귀를 맴도는 EDM과 기계음을 유달리 싫어했고, 아마 그런 노래가 취향이 되지 않을 거라며 친구에게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했을 정도로. 그런 소정서의 인생이 한 번에 뒤집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이었다.


    마이크 때문에 살짝 찢어지는 엠프 소리, 일렉 기타와 연결된 선이 조금 버벅 거려서 툭툭 튀는 음향, 그 와중에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자신들의 이름을 빨간 머리 연맹이라고 소개한 느닷없는 밴드의 시작을 목격한 건 수많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눈을 반짝이며 서있는 소정서에게는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이었다. 세상에 더 없는 충격. 다시는 오지 않을 외계의 위협. 폭탄 같은 운석 하나가 뚝 떨어져 주위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질 만큼의 폐허가 되어버린. 하지만 소정서는 그 모든 음악과 내레이션을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소정서의 인생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대 사건. 어쩌면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면 가장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때의, 이 순간일 거라고 믿게 되는 기분. 소정서가 경악스러운 첫 무대가 끝이 난 밴드 빨간 머리 연맹의 팬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관심이 하나도 없지?

    그런 거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연태정을 몰라?

    …… 지금은 알아.



    신호의 타박에 가까운 말에 소정서는 다소 위축이 된 얼굴을 했다. 소정원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피크닉을 마시고 있는 소정서가 내뱉은 빨간 머리 연맹의 시작을 무심하게 듣던 신호가 ‘그거 서이담이랑 연태정 있는 밴드인가?’ 하고 받아쳤다. 소정서는 그전까지 밴드 음악에 몰두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학교에 공식 밴드라고 있는 반향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신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는 왜 그렇게 잘 아는 거냐고 중얼거려도 신호는 소정서의 이마를 콕콕 찌르면서 너만 모르는 거라며 다시 타박을 했다. 이름도 모르면서 무슨 팬을 하겠다고…. 신호의 이어지는 말에 이마를 문질거리던 소정서는 다시금 반짝이는 눈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제 아니까 할 수 있지. 신호는 절대 물러설 리 없는 소정서의 성격을 지레짐작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근데 너 그렇게 티내면 애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거 아냐? 소정서는 문득 시선을 신호에게 향한 채 살짝 굳은 얼굴을 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했다는 듯 멍한 얼굴이었다. 아주 난리다……. 신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대한 가볍게 좋아하는 척을 해. 그러면 되잖아? 신호의 조언은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물론 자신이야 너가 밴드를 좋아하는 게 처음이고, 다신 없을 일이라는 걸 알지만 걔네들은 모른다. 그러니까 원래 밴드음악을 즐기는 척, 그러니까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하라. 라는 게 주요 논점이었다. 소정서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게 하면 진짜 될까? 하며 우는 소리를 계속 했지만 신호의 단호하고 칼 같은 말에 결국 알겠다며 다짐을 계속 해나갔다. 어차피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이고, 한 번쯤은 우연으로라도 마주칠 거다……. 물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소정서에게는 있었지만 –그건 마치… 아이돌팬이 아이돌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공방을 가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도 팬의 마음이었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덜 부자연스러울까? 혹시나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답을 하나 또렷하게 내리기 힘든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스산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게 두려움에 떠는 소리보다는 포근하고 들뜬 청량한 소리에 가까웠다.


    감격의 첫 만남은 다른 곳도 아닌 기숙사 1층에 위치한 매점에서였다. 언제나 마시는 건 피크닉, 사서 먹는 건 왕꿈틀이나 딸기맛 추파춥스. 언제나 그렇듯 똑같은 종류의 과자를 골라놓은 소정서는 자신의 앞에 있는 빨간 머리의 소년을 보고 금방 그것이 빨간 머리 연맹의 서이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만남은 예상하지 못한 거여서, 소정서는 금방 빨갛게 물들어버린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말을 걸어도 될까? 그런 고민을 잔뜩 하는 와중에 소정서의 머리를 가득 울린 건 신호의 목소리였다. 이때를 위해서 고민한 건데 왜 망설여? 그게 단 하나의 용기라면 용기라고 긴장으로 잔뜩 땀이 난 손을 아무렇지 않게 닦고 숨을 후 내뱉었다. 그리고 추파춥스 체리맛을 골라 빠르게 계산까지 마치고, 더 빠르게 움직여 서이담의 앞 쪽으로 가서 섰다. 안녕, 혹시 지난달에 교문 앞에서 게릴라 했던 밴드 보컬 맞지? 떨리는 목소리를 잔뜩 숨기고 웃는 얼굴을 한 소정서의 손에서는 여전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 오늘 이담이 만났다?

    성 떼고 부른 거 보니까 친해졌나보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뭐야.

    몰라.

    아, 그럼 끊어. 진짜 귀찮아 소정서….

    아아…. 잠시만.

    좋았던 거라도 있어?

    노래 들어줘서 고맙대.



    소정서는 잔뜩 들뜬 목소리를 하다가 결국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목소리에도 어쩐지 숨겨지지 않았던 건지 수화기 건너편의 신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걸로 우냐? 하며 잔뜩 놀려댔다. 어휴, 평소에 눈물은 죽어도 없으면서 왜 이런 곳에서는 울어? 신호의 말을 들으면서도 소정서는 살짝 코 먹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웃었다.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나나봐.


    서이담을 만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 소정서가 만난 건 연태정이었다. 사실 처음 만남은 매점이라는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교정을 걷고 있는 연태정을 소정서가 발견한 것이 맞았다. 어쩌면 우연일지도 모르는 만남에 소정서는 이번만큼은 제대로 하겠다며 다짐을 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갑작스러운 발견에 조금 붉어진 채였지만 이 정도는 티 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소정서는 주머니에 자주 들고 다니는 사탕을 꺼내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매번 멤버들과 만날 때마다 사탕을 들고 있네…. 짤막한 생각을 거뒀다가 발걸음을 빨리 해서 연태정의 앞에 선 소정서는 이전 서이담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말을 걸었다. 안녕, 혹시 빨간 머리 연맹에서 기타 치는 애 맞니? 조금 얼떨떨해 하는 연태정의 얼굴을 앞에 두고 소정서는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건넸다. 노래 잘 들었어. 목소리의 끝은 조금 떨렸고, 그게 들킬까봐 살짝 초조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지만 웃는 얼굴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2020.03 소정서 관계 로그 (용의자 클럽/ 서이담&연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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