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첫사랑




    REC.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오신 게 맞죠?

    네. 조금 긴장이 되네요. 익명으로 들어가는 거죠?

     

    네. 편하게 얘기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혹시 이게…… 선배에게도 들어가게 되나요?

     

    인터뷰의 내용에 따라 수정될 수 있어요.

    아…….

     

    지금이라도 그만 하시는 거라면 괜찮아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편하게 얘기 부탁드릴게요.

    제가 재윤 선배를 처음 만난 건 학교에 들어오고 직후였어요.

     

     

     

    아시다시피 저희 고등학교가 셔틀 버스가 잘 안 다니기로 유명하잖아요. 저는 인천에서 온 것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인천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안 좋은지 잘 몰랐어요. 면접 보거나 기숙사 들어갈 때는 부모님이 태워주셨거든요. 그래서 별로… 그런 거에 대해서 생각을 못해봤는데, 잠깐 셔틀 버스를 타고 나갈 일이 생겼었거든요. 나가는 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금방 탔는데, 돌아올 때 버스가 없더라고요. 저는 별로 안 걸리는 줄 알고 나갔다 오겠다고 한 거였는데… 친구들이 말리는 이유를 엄청 늦게 알아버린 거예요. 하필 가볍게 나온 거라서, 3월 초였는데 엄청 추웠어요. 저는 너무 가볍게 나오느라 가디건 하나 입고 있었고, 휴대폰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았더라고요. 학교로 돌아갈 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닥치니까 너무 서러웠어요. 그렇잖아요. 사람이 갑자기 흔들리면 눈물이 핑 돌고… 그때 만났어요. 같은 정류장에 서있었거든요. 선배랑.

    제가 교복을 입고 있어서 알아봤다고 했어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하면서 먼저 말을 걸어주셨는데… 선배는 교복을 안 입고 계셔서 저는 치한이거나 그런 줄 알고 엄청 무서워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선배가 무섭게 생겼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워낙 크시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막 더듬거리니까 선배도 아셨나 봐요. 그래서 자기도 우성고 학생이라고, 셔틀 버스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셔서 알았어요. 너무 미안해서 아 죄송하다고 했는데 그냥 괜찮다고 몇 번 말하시더니 갑자기 옷을 벗으시는 거예요. 그때 선배는 조금 긴 패딩을 입고 계셨거든요. 안에는 트레이닝 복이었고요. 왜 갑자기 벗으시는 거지? 너무 이상해서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고, 애들한테 일러줘야지, 했는데 금방 저한테 주시더라고요. 추워보였대요. 저 진짜 괜찮다고 했는데 그냥… 웃어버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받아서 입었어요. 전 근데 이상한 그게 너무, 너무 좋아서 울 뻔했어요.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는 금방 옷도 드리고 금방 헤어졌어요. 그때 자기는 3학년이고, 체육 특기생이라서 나온 건데 너는 왜 나온 거냐고 물어봐주셔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너무 예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말해서 아, 진짜 특이한 사람이라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국제 과정이고, 선배는 국내 과정이라고 해서 마주칠 일은 대부분 없겠다고 하니까 좀 슬프긴 했어요. 왜인지는 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선배를 좋아했던 거더라고요.

    4월이 되고 나서야 선배가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전국 단위 시합에 나가는 태권도 선수인 것도 몰랐는데 게시판에 우승했다는 게 걸리고 나서야 알았죠. 뭔가 그 우승이라는 단어만 봤는데도 짐작이 가는 거예요. 어떻게 웃고, 어떻게 좋아했을지. 고작 한 번 만났던 사람인데 눈앞에 그려지는 게 더 신기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참 좋았어요. 우승했다는 트로피를 받았을까? 아니면 메달? 그걸 받고 목에 걸고, 사진을 찍고… 어떤 얼굴로 어떻게 즐거워했을까. 그래서 처음으로 태권도에 대한 것도 찾아 봤어요. 경기도 보고요. 그러고 나니까 한 번쯤은 보러 가고 싶더라고요. 이상하죠. 선배는 절 기억도 못할 텐데 말이에요. 근데… 원래 짝사랑은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고, 친구들이 말해줬어요. 상대는 기억도 못할 걸 아는데 좋아하게 되는 게 사랑이라고요.

     

     

    다음 경기가 있었던 건 5월이었어요. 알려고 했던 건 아닌데 태권도에 대해서 며칠을 캐고 다니니까 친구가 답답했는지 알려줬어요. 유명 대학에서 열리는 경기인데, 웬만한 학생들은 다 참여한다고요. 그 말은 선배도 참여한다는 뜻이었죠. 운이 좋게 주말에 경기더라고요. 아마 원래도 주말에 열리는 거였겠지만, 전 그런 건 잘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찾아갔어요. 혼자 가기는 너무 무서워서 친구랑 같이요. 대학교를 가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는데 경기를 보러 가는 건 처음이라서 엄청 떨렸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안내 표지판도 있었고, 저 말고 보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다행이었어요. 경기장 안은 온통 파스 냄새와, 체육관 특유의 왁스 냄새로 가득했어요. 별로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 냄새가요. 코를 살짝 틀어쥐고 어영부영 2층 쪽에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딱 바로 밑에 선배가 보이더라고요. 태권도복을 입고 있는 건 처음 봤어요. 학교에서 몇 번 운 좋게 마주칠 땐 당연히 교복 차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뭔가… 낯설어 보이더라고요. 이상하게…….

    뭔가 예상한 모습이랑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전 몇 번 본 적이 없었지만 가끔 소란스럽게 떠드는 것도 봤거든요. 몇 번씩 교무실에 갈 때도 선배의 이름을 몇 번 언급하시면서 지금 학년에는 그런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식으로 말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을 곱씹어 봐도 꽤 장난을 자주 치신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게 오히려 저한테 말을 걸었던 그 사람이 맞구나, 라는 걸 실감하게 했지만요. 그래서 그런지 경기 전에 몸을 풀 때도 좀 장난을 많이 치는 사람일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너무 진지하고 소리가 정말 쾅, 쾅 소리가 나서 무서웠어요. 뭔가 상상하던 그런 거랑 너무 달라서요. 근데… 그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심장이 쿵쿵 뛰는 거예요. 예상과 달라서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그랬던 걸까요.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들어가는데 몇 번 보지 못하고 금방 체육관을 뛰어 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너무 무서웠거든요. 퍽퍽 소리가 나고, 몇 번 몸이 휘청거리는데… 제 손에 다 땀이 나서 한참을 체육관 앞에 서서 멍하니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근데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보기엔 저 상황이 너무 무섭고, 저 발차기에 맞으면 너무 아플 것 같았는데 선배는 계속 버티시더라고요. 두 다리가 바닥에 계속 지탱한 채 꿋꿋하게 서서요. 그 뒷모습을 보다가 못 견딜 것 같았어요. 절 따라 나온 친구를 붙잡고 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경기를 더 보지 못한 채 돌아갔어요. 끝에 어떻게 이기는지, 또 어떻게 1등까지 되는지 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될 것 같았어요.

    경기 결과를 찾아보니까 1등을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짤막하게 사진이 달려있는 것에서 선배는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거기엔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웃고 계신 선배의 모습이 있었고, 저는 그때야 좀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록은 재윤 선배의 졸업을 위한 게 맞죠?

    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그 7월을 이야기 해야겠네요.

    기억이 잘 안 나면 얘기 안 해줘도 돼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지금은 정말로요.

     

    플라이 드림즈 서포터즈 공고 떴을 때부터 사실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신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아서 결국 못했어요. 근데 선배는 붙었다고 선생님들이 이야기 하는 걸 들었어요. 그때 좀 후회도 했던 것 같아요. 아, 신청해볼걸. 하고요. 근데… 결국 안 하는 게 좋았더라고요.

    선배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사실 모를 수가 없었어요. 방학이긴 했지만 선배는 학교에 자주 나오시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학교에 나오지 않으시더니 돌연 입원을 했다는 걸 들었어요. 뭔가 잘못됐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요. 입원하셨다는 말에 금방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전 그때까지도 선배랑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계속 뭔가를 찾아봤던 것만 기억이 나요.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너무 무서운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처음으로 편지를 써봤던 것 같아요. 팬이라는 이름으로요.

    편지를 보내면서도 들키지 않을까,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닐까, 고민을 했어요. 팬이라고 했지만 사실 거의 좋아한다고 말만 안 했지 연애 편지였거든요. 그래서 답장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선배가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았는데, 진짜 전 하나도 몰랐던 거예요. 삐뚤삐뚤 다 엉망인 글씨로 답장이 왔어요. 진짜 너무 글씨를 못 썼는데, 그것도 너무 좋아서 편지를 받고 울었던 것 같아요.

     

    편지의 내용을 알려줄 수 있어요?

    네. 물론이죠.



     편지를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이 건강해진 것 같네요. 아마 같은 학교 안에서 만나는 친구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지만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을게요. 답장을 보낼 줄도 몰랐을 것 같으니까. 몸은 많이 나았습니다. 운동을 하는 데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 거예요. 어떤 경기를 보고 저를 응원할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응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위안이 됩니다. 여름날이 더운데 몸조심 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편지는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결국 고백은 못했어요. 다가가기 너무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선배는 벽을 치는 사람도 아니었고, 얼마든지 제가 모르는 척 다가가도 말을 받아주실 걸 알았지만… 그냥 거리가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선배는 편지의 말처럼 금방 나아서 학교로 돌아오셨지만 그래도 그렇게 많이 다친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안 좋았는데… 경기는 뛴다고 하셨어요. 전국체전을 간다고요. 저는 체육에 대해서 단 하나도 모르지만 전국체전이 얼마나 큰 경기인지는 알거든요. 그래서… 선배가 꼭 잘 됐으면 하고 바랐어요. 경기도 안 보러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같이 가자고가자고 해서 결국 그것도 보러 갔어요. 근데 계속 경기를 보는 건 기분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태권도 종목 마지막 날에만 가자고 했어요. 선배는 뭔가,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계시더라고요. 여전히 몸을 풀고 계셨고…… 딱 몇 개월 전에 봤던 얼굴이랑 또 많이 달랐어요. 제가 이런 말을 표현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 비장하게 보였거든요. 태권도복을 입었는데 드러나는 팔 부분에 흉터 자국이 있는 게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옆에 계신 코치님인가 한 분이 계속 선배를 말리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아마 힘들면 뛰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때도 계속 손에 땀이 나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게 마지막 경기일 것 같았거든요. 제가 볼 수 있는 선배의 마지막 경기. 친구는 옆에서 저 선배 저렇게 생겼나? 하면서 묻기 바빴는데 대답도 못할 정도로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저는 선배가 이기면 후련해질 줄 알았어요. 제가 가진 감정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경기가 끝나고 선배의 우승으로 마무리되고, 나중에 메달을 받으시는데 선배가 우시는 거예요. 전 처음 봤어요. 선배가 울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때가 딱… 장해도, 맞죠? 그거 밝혀졌을 때라서…… 더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우실 줄 정말 몰랐어서…… 전 고작 관객이고 그걸 바라볼 뿐이었는데도 너무 슬퍼서 저도 같이 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뒤에서만 또 보다가 나왔어요. 이번에는 꼭 꽃다발이라도 주라고 친구가 등을 계속 떠밀었는데 줄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제가 그 상황에 들어가겠어요.

    고백은 못했지만 그래도 후련해요. 그런 사람을 좋아했다는 게 후회되지 않거든요. 친구들은 고백 한 번 못해봐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나았던 건가 싶거든요. 학교에 돌아와서는 곧장 국제 과정 수업을 따라가느라 힘들어서 선배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없었어요. 갑자기 선배에 대한 얘기도 안 하고 체육에도 흥미를 뚝 끊어서 그랬는지, 친구들은 무슨 일이 있냐고 먼저 물어봤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선배가 울어서 마음이 식었다고 했어요.

     

    마지막을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재윤 선배. 졸업 많이 축하드려요. 그리고 정말 많이 좋아했습니다. 제 첫사랑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2020.04 하재윤 개인 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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